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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며느리 김씨 압승술 사건 『세종실록』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세자의 신발 뒤축을 태워 가루 낸 뒤 술에 타 먹이려 했던 세자빈의 금기 주술 사건.
한 궁녀의 고변으로 발각돼 하룻밤 사이에 폐출된 조선 왕실 최초의 대형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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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200자 내외)
"감히 상상이나 하셨습니까? 칭송받는 성군 세종대왕의 맏며느리이자, 조선의 국모가 될 세자빈이 남편의 신발을 불에 태워 그 재를 먹이려 했다는 끔찍한 사실을 말입니다. 질투에 눈이 멀어 궐내에 뱀을 끌어들이고 금기된 흑마술에 손을 댄 여인. 하룻밤 사이에 가장 높은 곳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조선 왕실 최초의 세자빈 폐출 사건, 그 은밀하고도 소름 돋는 그날 밤의 기록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1: 자존심이 무너진 세자빈
조선의 심장, 한양의 밤하늘은 유난히도 무겁고 서늘했다. 붉은 단청이 위용을 자랑하는 웅장한 궁궐의 전각들 사이로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닥칠 때마다, 창호지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구슬픈 곡소리처럼 궐내를 맴돌았다. 장차 조선의 제5대 국왕이 될 왕세자 향, 즉 훗날의 문종이 거처하는 동궁전의 밤은 겉보기엔 한없이 평화롭고 고고해 보였다. 그러나 동궁전의 안주인이 머무는 내전 깊숙한 곳의 공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날 선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최고급 명주실로 짜낸 화려한 붉은빛 이부자리는 오늘 밤도 주인의 온기를 품지 못한 채 서늘한 냉기만을 뿜어내고 있었고, 십장생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병풍 앞에는 핏기가 가신 창백한 얼굴의 여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당대 조선 최고의 명문가, 안동 김씨 가문의 금지옥엽으로 태어나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조선의 세자빈으로 간택된 여인, 휘빈 김씨였다. 그녀의 아름답고 고운 미간에는 짙은 그늘이 패어 있었고, 촛불의 일렁임에 비친 두 눈동자에는 지독한 원망과 서글픔이 뒤엉켜 묘한 광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마, 고정하시고 그만 옥체를 뉘시옵소서. 벌써 삼경이 지났사옵니다. 밤이 깊어 이슬이 차갑사온데, 이리 밤을 지새우시면 옥체에 병이 나실까 저어되옵니다. 세자 저하께서는 오늘 밤도 서연에서 학문에 매진하시느라 환궁치 않으신다 하옵니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어릴 적부터 그녀의 수발을 들어온 늙고 충직한 상궁이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이 그득한 목소리로 애타게 달래보았지만, 여인은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상궁의 위로 섞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도리어 여인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가 되어 꽂히고 있었다. 창호지에 비친 앙상하고 메마른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마치 궁궐 안 모든 궁인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학문에 매진하신다고? 핑계 한 번 참으로 고상하시구나. 세상을 속일지언정 내 눈마저 속일 수 있을 줄 아느냐. 그 잘난 학문과 국사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고는, 밤마다 내 처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저 천박한 궁녀년들이나 후궁들의 처소만 기웃거리시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여인의 얇고 붉은 입술이 파르르 경련하듯 떨렸다. 그녀의 지아비인 왕세자는 부왕인 세종대왕을 쏙 빼닮아 학문을 사랑하고 성품이 인자하기로 궐내에 소문이 자자한 완벽한 사내였다. 그러나 그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는 유독 정실부인인 자신에게만큼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자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게 그녀를 대했고,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세자가 동궁전 본채의 문턱을 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궐에 들어왔으나, 왕실의 후사를 잇기는커녕 지아비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이 조선의 세자빈인 내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단 말이냐! 내 미모가 저잣거리의 천한 여인들만 못하단 말이냐, 아니면 뼈대 깊은 내 안동 김씨 가문이 저 보잘것없는 후궁 년들의 집안만 못하단 말이냐! 어찌하여 나를 이리도 비참하게 짓밟으신단 말이냐!"
결국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던 억눌린 분노가 날카로운 비명이 되어 동궁전의 적막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여인은 참지 못하고 곁에 놓여 있던 귀한 옥로 백자 다기를 집어 들어 문지방을 향해 거칠게 집어 던졌다. 와장창 하는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도자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날카로운 파편 하나가 여인의 고운 비단 치맛자락을 찢고 발등에 작은 상처를 내었지만, 그녀는 육신의 고통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거절이나 실패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했던,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오만한 명문가의 여식이었다. 가장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지아비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외면당했다는 수치심은 그녀의 멀쩡했던 이성을 서서히, 그리고 무섭게 갉아먹고 있었다. 방 밖에서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던 어린 나인들은 세자빈의 서릿발 같은 진노와 광기 어린 절규에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웅크리며 눈물만 흘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선 왕실의 심장부 한가운데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조용하고도 치명적인 파국의 독버섯이 그 뿌리를 깊게 내리며 자라나고 있었다.
※ 2: 궁녀 호동의 입에서 나온 금지된 비방
며칠 뒤, 궐 안의 보는 눈들을 피해 동궁전 가장 깊숙한 곳에 마련된 은밀한 밀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두껍고 어두운 휘장을 겹겹이 쳐놓아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그 음습한 방 안에서, 세자빈은 며칠 전보다 훨씬 더 초췌하고 메마른 얼굴로 홀로 앉아 있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독수공방의 서러움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탓에 옥같이 곱고 통통했던 뺨은 푹 패여 버렸고, 한때 맑게 빛나던 두 눈에는 기괴한 핏발이 얽혀 있었다. 궐 안의 수많은 눈과 귀가 자신의 몰락을 기다리며 수군거리는 환청에 시달리던 그때, 굳게 닫힌 밀실 문밖에서 낮고 조심스러운, 뱀이 똬리를 트는 듯한 은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소인 호동이옵니다. 주상 전하의 눈을 피해 은밀히 드시라 하신 하명에 따라, 아무도 모르게 발걸음 하였사옵니다."
동궁전의 궂은일과 잡일을 도맡아 하던 비천한 신분의 궁녀 호동이었다. 세자빈은 다급하고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문을 조금 열어 호동을 방 안으로 재빨리 끌어들였다. 궁궐의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굴러먹으며 눈칫밥으로 생존해 온 호동은, 양반네들의 점잖은 서책에는 나오지 않는 저잣거리의 온갖 잡스러운 소문과 미신, 그리고 음험한 술수들에 누구보다 능통한 자였다. 세자빈은 잔뜩 핏발이 선 불안한 눈동자로 주위를 한 번 힐끔거린 뒤, 바짝 마른입술을 축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이년, 내 귀에 듣자 하니 네가 궁궐 밖 민가의 온갖 기이한 술법들과 기구한 방도들을 훤히 꿰뚫고 있다고 들었다. 말해 보아라. 내 지아비이신 저하의 그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을 당장 내게로 되돌릴 방도가 정녕 이 천지간에 존재한단 말이냐? 무엇이든 좋다. 천금, 아니 만금을 수레에 실어 주어도 아깝지 않으니, 지금 당장 내 앞에 그 신통한 방도를 대령해 보아라!"
궁녀 호동은 방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교활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세자빈의 얼굴에 서려 있는 지독한 광기와 이성을 잃은 절박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호동의 입가에, 아무도 모를 비열하고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마마, 참으로 고귀하신 옥좌 앞에서 천한 입에 올리기 황송하오나... 소인이 알기로 무지렁이들이 사는 민가에서는 달아난 사내의 마음을 단숨에 돌려세우고 첩실들을 쫓아내는 데 쓰이는 아주 영험하고 용한 비방이 하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사옵니다. 무당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압승술(壓勝術)'이라 부르옵는데, 연적의 기운을 무참히 짓누르고 지아비의 혼을 단단히 옭아매는 참으로 무섭고도 확실한 흑주술이옵니다."
'압승술.' 그 불길하고도 매혹적인 낯선 단어가 세자빈의 귓가에 달라붙어 독사처럼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 방도라는 것이 어찌하는 것이냐! 어서 고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느냐!"
"저하께서 요즘 밤낮으로 찾아 총애하신다는 그 천한 궁녀 효동이란 년, 혹은 승휘 홍씨 년의 처소에 몰래 숨어들어 그년들이 매일 신고 다니는 가죽신을 훔쳐내시옵소서. 그리고 마마의 손으로 직접 그 신을 갈기갈기 찢어 숯불에 새까맣게 불태우시옵는 겁니다. 그런 다음 그 재를 고이 모아 마마께서 베고 주무시는 베개 밑에 남몰래 숨겨두시면, 저하의 마음이 거짓말처럼 연적에게서 멀어지고 오로지 마마께로만 돌아설 것이옵니다. 허나 마마..."
호동이 말끝을 흐리며 주저하는 척 연기를 하자, 마음이 다급해진 세자빈은 숨이 넘어갈 듯한 기세로 달려들어 호동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허나 무엇이냐! 내 애간장을 다 녹일 참이냐!"
"주술이란 본디 양날의 검과 같아 그 기운이 참으로 맹독과도 같사옵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 일이 발각되어 대전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궐의 그 엄격한 법도에 따라 마마께서는 세자빈의 자리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뿐인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순간 세자빈의 뇌리에 용상에 앉아 벼락같이 호통을 치는 시아버지, 세종대왕의 서슬 퍼런 얼굴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조선의 건국 이념인 유교적 도리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며,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괴력난신과 미신을 병적으로 혐오하는 군주가 아니던가. 발각되는 날에는 가문의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대역죄였다. 하지만 매일 밤 빈방에서 홀로 피눈물을 삼키며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세자빈에게, 그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이대로 남편에게 버림받아 온 궁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된 채 평생을 쓸쓸한 뒷방 늙은이로 썩어가느니, 차라리 악귀의 힘을 빌려서라도 단 한 번만 그분의 뜨거운 품에 안겨보리라!'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던 최고급 황금 비녀를 뽑아 호동의 품에 억지로 찔러 넣어주었다.
"가거라! 당장 가서 목숨을 걸고 그년들의 신발을 내 앞에 훔쳐 오너라. 궐 안의 그 누구의 눈에도, 쥐새끼 한 마리의 눈에도 띄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야!"
※ 3: 연적의 가죽신을 베어내다
며칠 후, 달포조차 구름에 가려 궐 안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깊은 밤. 세자빈의 내전 침소 문이 쥐도 새도 모르게 소리 없이 스르륵 열리더니, 검은 무명옷으로 전신을 감싼 그림자 하나가 쥐새끼처럼 날렵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세자빈의 은밀한 명을 받은 궁녀 호동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호동의 품에는 흙먼지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작고 고운 여자 가죽신 한 짝이 소중하게 안겨 있었다. 세자가 최근 들어 가장 총애하여 뻔질나게 드나든다는 후궁, 승휘 홍씨의 처소 앞뜰에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몰래 훔쳐 온 전리품이었다.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이제 넌 밖으로 나가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철저히 망을 보거라."
덜덜 떠는 호동을 황급히 내보낸 세자빈은 미세하게 떨리는 두 손으로 그 훔쳐 온 가죽신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신발을 가까이 가져가자, 궐내에서 가장 비싸고 귀하다는 은은한 매화향 분냄새가 가죽에 깊이 배어 코끝을 찔렀다. 이 앙증맞은 신발을 신고 사뿐사뿐 걸어가 지아비인 세자의 넒은 품에 안겨 교태를 부리고 가증스럽게 웃음 지었을 연적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아른거렸다. 상상만으로도 위장이 뒤틀리고 뜨거운 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천한 핏줄을 타고난 네깟 년이 감히 하늘 같은 동궁의 안주인 자리를 넘보려 들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여우 같은 년이 내 사내의 사랑과 정기를 독차지한단 말이냐!"
세자빈은 방구석에 놓인 반짇고리에서 번뜩이는 날을 품고 있는 날카로운 은장도를 꺼내 들었다. 본디 사대부 여인들이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품고 다니는 은장도가, 지금은 남편의 여자를 저주하고 난도질하기 위한 끔찍한 흑주술의 도구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질투와 분노를 넘어선 기괴하고 오싹한 희열로 미친 듯이 번뜩이고 있었다.
"죽어라! 네년의 그 천박한 기운을 내 손으로 직접 끊어버리겠다. 영영 저하의 곁에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게 네년의 발목을 모조리 분질러 버릴 것이야!"
허공을 가른 예리한 은장도가 승휘 홍씨의 가죽신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찍- 찌익- 두꺼운 가죽이 날카로운 쇠붙이에 찢겨나가는 둔탁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고요하고 텅 빈 방 안을 기괴하게 울렸다. 단단한 신발 밑창을 베어내느라 여인의 하얀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맺혔고,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표정은 흡사 피를 탐하는 지옥의 야차와도 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갈기갈기 찢겨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가죽 조각들을 작은 화로에 쓸어 담은 그녀는, 미친 듯한 손놀림으로 불씨를 당겼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매캐하고 역겨운 가죽 타는 냄새가 맹독 같은 짙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방 안을 숨 막히게 채우기 시작했다. 눈이 맵고 매운 연기가 목구멍을 찔러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세자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하하하! 그래, 타라. 모조리 타서 흉측한 잿더미가 되어버려라. 이 원념이 담긴 재를 품고 자면, 내일 밤에는 정녕 저하께서 내 처소로 드시어 나를 안아 주시겠지. 오직 나만을 바라보시겠지."
불길이 사그라지고 가죽신이 새까만 재로 변하자, 세자빈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식어버린 까만 잿가루를 싹싹 긁어모았다. 그것을 붉은색의 작은 비단 주머니에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소중히 담고는, 자신이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며 베고 자는 화려한 원앙 베개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게 쑤셔 넣었다. 그날 밤, 끔찍한 저주의 의식을 마친 여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달콤하고 깊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세자는 후궁들을 모두 내치고 오직 자신만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따뜻한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그 처절하고도 슬픈 환상에 취해, 그녀는 잠결에도 미친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4: 세자의 신발을 불태워 가루를 내다
그러나 얄궂은 귀신의 장난과 헛된 희망은 딱 거기까지였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무심히 흐르고, 어느덧 한 달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건만 동궁전 본채를 향하는 세자의 발걸음은 여전히 끊어진 지 오래였다. 베개 밑에 연적의 재를 품고 밤마다 치성을 드렸지만 주술의 효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 사악한 기운 탓인지 세자는 세자빈을 마주칠 때면 이전보다 훨씬 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노골적으로 피하기까지 했다. 산처럼 컸던 기대가 처참하게 무너지자, 절망은 거대한 폭포수처럼 그녀의 온몸을 덮쳐 내렸다. 이제 여인의 텅 빈 가슴 속엔 한 줌의 이성조차 남지 않았고, 오직 연적들을 향한 지독한 살의와 지아비를 소유하려는 맹목적인 집착만이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깊은 밤의 밀실로 불려 온 궁녀 호동은, 마치 악귀가 씌운 듯 눈이 뒤집힌 세자빈의 서릿발 같은 추상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네년이 감히 하늘 같은 나를 능멸하고 희롱한 것이냐! 네년이 시키는 대로 그깟 더러운 재를 베개 밑에 두고 잤건만, 저하께서는 어제도 궐의 그 천한 궁녀년의 처소에서 밤을 보내셨다! 당장 형틀을 대령해 네년의 목통을 날려버리기 전에, 당장 더 확실하고 치명적인 방도를 내놓지 못할까!"
목에 서늘한 칼날이 들어오는 듯한 죽음의 공포에 질린 호동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결국 절대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될 더 끔찍하고 극단적인 흑마술을 입에 올리고야 말았다.
"마마, 제발 소인의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실은... 민간의 깊은 음지에서 무당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전해지는, 천하에 이보다 더 지독하고 확실한 압승술이 딱 하나 남아 있사옵니다. 이번에는 연적의 더러운 신발 따위가 아니라... 마마께서 흠모하시는 사내, 즉 세자 저하께서 친히 신으시는 귀한 가죽신을 직접 태워야만 하옵니다."
'저하의 신발을 태우라고?' 세자빈의 핏발 선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조선의 엄격한 성리학 사회에서, 누군가의 땀방울이 밴 물건을 불태우는 행위는 곧 그 사람의 영혼을 저주하고 파멸로 이끄는 가장 끔찍한 짓으로 간주되었다. 하물며 지존의 자리에 올라 만백성을 다스릴 옥체를 지닌 왕세자의 물건을 훼손하다니, 이는 단순한 투기를 넘어 삼족을 멸할 역모나 다름없는 대역죄 중의 대역죄였다. 호동의 말은 곧 지옥불로 걸어 들어가자는 유혹이었다.
"저하께서 신으시는 가죽신을 몰래 빼내어 숯불에 태우신 후, 절구에 찧어 아주 고운 가루로 만드시옵소서. 그리고 그 시커먼 재를... 저하께서 드시는 맑은 술잔이나 찻잔에 몰래 타서 직접 드시게 하옵소서. 그 저주의 재가 저하의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저하께서는 마치 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마마를 보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맹목적인 사랑의 노예가 되실 것이옵니다."
사랑의 노예가 된다. 가슴을 후벼 파는 그 한마디의 끔찍한 달콤함이 세자빈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가닥의 이성마저 툭 끊어버렸다. 어차피 이대로 살아가나 죽으나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의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온 궐내의 비웃음을 받으며 평생을 비참하게 늙어갈 바에야, 차라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지옥 불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그 사랑을 강제로 쥐어짜 내어 독차지하고 싶었다.
"가져오너라. 당장 오늘 밤 지체 없이 동궁의 침소에 쥐새끼처럼 숨어들어, 저하께서 가장 아끼시는 그 가죽신을 내 앞에 대령해라. 이번에 실패하면 네년의 목숨은 정녕 없을 줄 알아라!"
그날 밤, 세자빈의 내전에서는 이전의 가죽신을 태울 때보다 훨씬 더 진하고 역겨운,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지독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여인은 궁녀들마저 모두 물리친 채 직접 화로에 벌건 숯불을 피우고, 남편의 땀과 고귀한 체취가 깊게 밴 가죽신을 사정없이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시커먼 불길이 세자의 신발을 핥으며 문드러뜨리는 흉측한 광경을,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지글거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신발이 점점 잿더미로 변해갈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수천 번 수만 번 피를 토하듯 주문을 외웠다.
'타라, 남김없이 타버려라. 이 잿가루가 저하의 목구멍을 타고 기어이 넘어가는 순간, 당신의 영혼은 오직 나만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아무도 당신을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다 타서 새까맣게 변해버린 불길한 재를 곱게 갈고 또 갈았다. 행여나 나중에 술에 탔을 때 이물질이 씹혀 모든 계획이 들통날까 두려워, 가장 고운 비단천을 가져다 거르고 거르며 아주 미세한 흑색 가루만을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은비녀통 깊숙한 곳에 조심스레 털어 넣었다. 이제 그녀의 하얗게 질린 두 손에는, 지아비의 영혼을 조종하고 왕실의 운명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악마의 묘약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무너져 내린 한 여인의 거대한 광기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다.
※ 5: 세자의 술잔에 스며든 검은 잿가루
며칠 뒤, 궐 안의 긴장감이 고조되던 어느 날. 왕실의 작은 연회가 열려 어수선한 틈을 타, 세자빈은 세자를 자신의 처소로 간곡히 청했다. 날이 차가워지니 동궁의 안주인으로서 저하의 옥체를 보존할 귀한 다과와 약술을 대접하고 싶다는, 겉보기엔 참으로 지극정성인 명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단칼에 거절하며 서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세자였지만, 안동 김씨 가문의 체면을 중시하는 엄격한 왕실의 법도상 정실부인의 이토록 공식적이고 간절한 요청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세자는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참으로 오랜만에 동궁전 본채의 문지방을 넘었다. 굳게 닫힌 문 안쪽에는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기괴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짓누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궐내 최고급 산해진미와 화려한 은주전자가 놓인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고, 세자는 세자빈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무심하고도 차가운 표정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세자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저 의무감에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듯 허공만을 응시했다.
"저하, 바깥의 날이 참으로 매섭고 차갑사옵니다. 소첩이 밤낮으로 저하의 강녕만을 기원하며, 내의원에 명하여 옥체에 좋은 귀한 약재를 듬뿍 달여 빚은 술을 정성껏 준비하였사옵니다. 부디 소첩의 정성을 헤아리시어 한 잔 받으시옵소서."
세자빈은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세자의 귀에 들릴까 두려워하며, 최대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애썼다. 그녀의 시선은 옥색 백자 술잔에 꽂혀 있었고, 넓은 비단 소매춤 속으로 들어간 오른손은 몰래 숨겨두었던 차가운 은비녀통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세자가 무료함을 달래려 고개를 돌려 잠시 창밖의 뜰을 향한 찰나의 순간, 여인의 억눌렸던 광기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빠르게 은비녀통의 뚜껑을 열었고,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왕세자의 맑은 술잔 안으로, 시커멓게 타버린 남편의 가죽신 잿가루가 소리 없이 쏟아져 내렸다. 독을 품은 미세한 가루는 투명한 술의 표면에 닿자마자 기괴하게 흩어지며 미세한 탁기를 띠었지만, 어두컴컴한 방 안의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는 그 불길한 흔적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드, 드시옵소서 저하. 옥체를 덥히는 데 이만한 명약이 없을 것이옵니다."
여인의 두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리며 그 저주의 술잔을 세자 앞으로 조심스레 밀어 올렸다. 이 한 잔만 들이켜면 된다. 이 검은 물이 저 남자의 목구멍을 타고 식도로 넘어가는 순간, 평생토록 나를 벌레 보듯 외면하고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저 도도한 눈빛이 오로지 나만을 향해 맹목적인 애정으로 타오를 것이다. 세자빈의 귓가에는 이미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천둥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세자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부인이 올린 술이니 거절할 명분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잔을 집어 들었다. 서늘한 옥잔이 세자의 붉은 입술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저하! 아니 되옵니다! 그 술을 드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어서 잔을 내려놓으시옵소서!"
고요하던 방 안의 적막을 찢어발기며, 날카롭고 처절한 비명이 문밖에서 터져 나왔다. 밖에서 망을 보던 상궁들의 거센 제지를 온몸으로 뚫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궁녀 하나가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방바닥으로 짐승처럼 고꾸라졌다. 세자빈의 명을 받고 압승술의 주술에 가담했던 어린 궁녀 선덕이었다. 끔찍한 대역죄를 저질렀다는 극도의 공포와, 차기 국왕을 독살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가, 세자가 그 저주받은 술을 마시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이성을 잃은 채 난입해버린 것이다.
"네 이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불쑥 쳐들어와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당장 썩 물러가지 못할까!"
사색이 된 세자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짐승처럼 소리쳤지만, 세자는 이미 잔을 입술에서 떼어낸 채 차갑고 예리한 눈초리로 술잔 속을 유심히 노려보고 있었다. 촛불에 비친 맑은 술 밑바닥에는, 미처 다 녹지 못한 정체불명의 까만 잿가루들이 불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내 술잔에 들어있는 이 시커먼 가루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네년들이 지금 궐 한복판에서 내게 무슨 끔찍한 짓을 꾸민 것이냐!"
평소 학처럼 온화하고 부드럽던 세자의 입에서, 대들보가 무너져 내릴 듯한 벼락같은 분노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엎드린 채 사지가 마비된 궁녀 선덕은 벌벌 떨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연신 대리석 바닥에 이마를 찧어댔다. 이마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죽여주시옵소서 저하!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빈궁 마마께서... 마마께서 민가의 사악한 주술에 손을 대시어, 저하께서 아끼시던 가죽신을 숯불에 태우셨사옵니다! 그 끔찍한 재를... 그 재를 술에 타 저하께 먹이려 하셨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 순간, 세자빈의 얼굴에서는 세상의 모든 핏기가 일거에 빠져나갔다. 방금 전까지 지아비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광기 어린 희망에 부풀어 꽉 쥐고 있던 화려한 비단 치맛자락이, 핏줄이 하얗게 선 그녀의 손아귀에서 맥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 화려했던 그녀의 삶이, 가문의 영광이,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갈구했던 헛된 욕망이 일장춘몽처럼 산산조각 나는 파열음만이 거대한 동궁전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 6: 대전을 뒤흔든 세종대왕의 진노
보고는 일각의 지체도 없이 조선의 심장부, 대전(大殿)으로 즉각 올라갔다. 당대 조선의 위대한 태양이자 만백성의 어버이로 칭송받는 성군 세종대왕. 백성 앞에서는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한 임금이었으나, 왕실의 뼈대를 이루는 엄격한 기강과 나라의 근간인 유교적 법도를 흔드는 자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얼음장처럼 냉혹하고 무서운 군주가 바로 세종이었다. 야밤에 비상으로 열린 편전은 횃불로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졌고, 용상에 앉은 세종의 얼굴엔 전에 없던 무서운 분노와 진노의 불길이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
"내 귀를 의심하였느니라. 승지는 다시 똑똑히 고하라! 이 나라 조선의 국모가 될 세자빈이, 안동 김씨 가문의 뼈대 있는 여식이, 신성한 궐 안에서 저잣거리 무당년들이나 할 법한 괴력난신의 미신을 숭배하고 남편을 저주하는 압승술을 행하였단 말이냐!"
"전, 전하! 참으로 통재하옵니다! 금부도사가 빈궁의 처소를 급습하여 샅샅이 수색한 결과, 타다 남은 가죽신의 잔해와 까맣게 갈린 잿가루, 그리고 괴이한 주술에 쓰인 뱀의 허물과 부적 등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해괴망측한 물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사옵니다!"
승지의 떨리는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세종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옥좌의 손걸이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에 편전에 도열한 대신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방자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구나! 하늘의 이치를 받들고 지아비의 사랑을 얻는 길은 오직 부인의 온화한 덕과 지혜로움, 그리고 끊임없는 수양에 있거늘! 어찌 한 나라의 세자빈이라는 자가, 만백성의 어미가 되어야 할 자가 이토록 끔찍하고 천박한 흑마술에 손을 댄단 말이냐! 이는 나의 아들이자 차기 국왕이 될 세자를 능멸하고 그 목숨을 위협한 것이요, 신성한 왕실의 기강을 시궁창의 진흙탕에 처박은 천인공노할 대역죄니라!"
어명이 떨어지자마자 즉각 궐내에 무시무시한 추국청이 열렸다. 세자빈의 곁에서 주술에 가담하고 이를 부추겼던 궁녀 호동과 선덕은 형틀에 묶여 피가 튀는 혹독한 국문을 받았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 끝에, 그들은 세자빈이 후궁 홍씨의 신발을 찢어 불태우고, 궁궐 후원의 뱀을 끌어들여 저주를 내렸으며, 급기야 세자의 가죽신마저 숯불에 태워 그 끔찍한 재를 술에 탔던 모든 기괴하고 소름 돋는 행적들을 낱낱이 토해내고야 말았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명백한 증거와 증언들 앞에서, 대전 밖 차가운 댓돌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세자빈 김씨는 이미 혼이 나간 사람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평생을 걸고 지켜왔던 명문가의 고고했던 자존심과 오만함은 이미 형체도 없이 짓밟혀 산산조각 난 지 오래였다.
"아버님... 전하! 억울하옵니다. 소첩은 그저... 그저 지아비이신 세자 저하의 따뜻한 눈길 한 번이, 다정한 손길 한 번이 미치도록 그리웠을 뿐이옵니다. 저하께서 하도 소첩을 벌레 보듯 피하시고 독수공방의 밤이 너무도 길고 서러우니, 이 외로운 마음이 병이 되어 눈이 멀고 귀가 먹어 그만 헛된 요망한 꾀에 넘어간 것이옵니다! 내쳐지면 어찌 살란 말이옵니까! 부디, 부디 소첩의 가련한 처지를 가엾게 여기시어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여인은 이마의 피부가 벗겨져 붉은 피가 대리석 바닥을 흥건히 적시도록 미친 듯이 머리를 찧으며 애원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그녀의 처절한 통곡이 밤하늘을 찔렀지만, 용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종의 목소리는 북풍한설의 칼바람보다 더 매섭고 차가웠다.
"닥치라! 네년의 그 얄팍하고 이기적인 투기가 신성한 궐의 법도를 망치고 왕세자의 옥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여인에게 질투란 칠거지악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죄악이거늘, 너같이 요망하고 삿된 마음을 품은 여인에게 장차 이 나라 조선의 국모 자리를 맡겨 종사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승지는 들으라! 당장 저 천박한 여인의 머리에서 세자빈의 첩지를 거두고, 서인으로 강등하여 궐 밖으로 내치라!"
※ 7: 달빛 아래 내쳐진 세자빈의 최후
엄중하고도 냉혹한 세종의 어명이 편전의 밤공기를 가르고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조의 관원들과 상궁들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댓돌 위에 엎드려 울부짖는 세자빈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한때 궐 안의 모든 여인들이 우러러보며 부러워해 마지않았던 그녀의 화려한 머리 장식이 처참하게 뜯겨 나갔다. 무자비한 손길들이 그녀의 머리에서 국모의 상징인 굵은 금비녀와 용잠을 마구잡이로 뽑아내자, 잘 빗어 넘겼던 흑단처럼 검고 풍성한 머리칼이 귀신처럼 등 뒤로 쏟아져 내렸다. 뒤이어 그녀의 좁은 어깨에 찬란하게 놓여 있던, 차기 왕비의 고귀한 신분을 증명하는 금박의 화려한 흉배가 찌익-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무참히 뜯겨 나갔다.
"아아악! 안 됩니다! 손대지 마라! 나는 안동 김씨 가문의 적녀이자, 이 동궁의 하나뿐인 안주인입니다! 내가, 내가 어찌 이리 허망하게 쫓겨난단 말입니까! 저하! 세자 저하! 부디 밖으로 나오시어 소첩을 한 번만 살려주시옵소서! 저하아아!"
그녀의 처절하고 찢어지는 듯한 단말마가 궁궐 담장을 넘어 메아리쳤지만, 세자가 머무는 동궁전의 문은 끝끝내 굳게 닫힌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 하룻밤 사이였다. 천하를 호령할 조선 제일의 여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명문가의 고고한 여식은, 시퍼런 칼날 같은 어명 한 줄에 의해 가장 밑바닥의 평민으로 강등되어 자비 없이 궁궐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무겁게 깔린 궁궐의 후미진 뒷문. 그곳에는 화려한 호위병도, 그녀를 떠받들던 수십 명의 궁인들도 없는 초라하고 낡은 평민의 가마 하나만이 쓸쓸히 그녀의 추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실의 비단옷을 모두 빼앗기고 까끌까끌하고 거친 흰색 무명옷을 입은 채 길바닥에 내쳐진 그녀는, 이제 눈물조차 말라버린 듯 넋이 나간 사람처럼 텅 빈 허공만을 응시했다. 발걸음을 떼어 가마에 오르기 직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자신이 그토록 차지하고 싶어 안달했던 화려한 궁궐의 전각들, 그리고 세자가 머무는 동궁전 쪽을 처연하게 돌아보았다. 붉은 단청 지붕 위로는 차갑고 무심한 달빛만이 서늘하게 흘러내릴 뿐, 그녀가 자신의 영혼과 이성을 모두 불태워가며 그토록 애타게 갈구하고 원했던 지아비의 모습은 끝끝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모든 것이 한 줌의 재처럼 흩어지고 마는구나. 나를 태워버린 것은 그 누구의 저주도 아닌, 내 스스로가 피워 올린 지독한 욕망과 헛된 질투의 불길이었어. 모든 것이, 참으로 허망하구나.'
초점 잃은 여인의 푹 패인 뺨을 타고, 뒤늦은 회한과 절망이 뒤섞인 마지막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조선 왕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최초의 대형 스캔들이자, 세자빈 폐출 사건. 지아비의 마음을 강제로 훔치려다 금기된 선을 넘어버린 가련하고도 잔혹한 여인, 휘빈 김씨. 그녀는 한 번 닫히면 영영 열리지 않는 무거운 궁궐 문을 뒤로한 채, 캄캄한 역사의 뒤안길로 그렇게 쓸쓸하고 철저하게 지워졌다. 덜컹거리는 가마 소리가 어두운 한양의 밤거리로 멀어져 갈 때 즈음, 굳게 닫히는 궁궐 빗장의 둔탁한 파열음만이 그녀의 처참한 마지막을 배웅할 뿐이었다. 지독한 사랑과 통제할 수 없었던 광기가 빚어낸 끔찍한 궁중 잔혹사는, 누구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이렇게 뼛속까지 서늘한 비극으로 그 막을 내렸다.
엔딩 멘트 (200자 내외)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비뚤어진 집착이 불러온 끔찍한 파국, 어떻게 들으셨나요? 지존의 자리에 오를 세자빈조차 사랑 앞에서는 한낱 이성을 잃은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조선 왕실의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스캔들, 휘빈 김씨의 압승술 사건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실록 속 도파민 터지는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어)
"A cinematic, high-contrast historical illustration of a Joseon Dynasty Crown Princess in an opulent but dark traditional hanbok, secretly burning a pair of traditional men's leather shoes in a small antique brazier inside a shadowy royal chamber. Glowing embers and smoke rise to form subtle, spooky snake shapes. Her expression is desperate and crazed.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intricate Korean palace details, mystery and tension, hyper-realistic, 8k resolution."